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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마티스, 인테리어 이상의 가치

앙리마티스, 인테리어 그 이상의 작품

Henri Matisse

Fauvism, 야수파 화가들

20세기 모더니즘의 시초가 된 야수파 유파는 대개 색채를 과감하게 쓰는 특징을 보이는데요, 근세 미술 자연주의의 화풍이 유행을 다하고, 추상파, 입체파, 야수파 화가들이 피사체의 형태와 색채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인상을 강력하고 과감하게 표현하는 것이 대세를 이룬 시기의 화파입니다. 화가 앙리마티스는 대표적인 야수파의 화가로, 기존의 물체와 사물, 사람이 가진 고유 색에서 벗어나 작가 스스로가 느낀대로 색페와 모양을 표현해 냈기 때문에 기존의 고전적인 화풍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주관을 드러낸 모더니즘의 특색을 보입니다. 앙리마티스 외에도 야수파 화가에는 앙드레 드랭, 블라맹크, 라울뒤피 등이 있습니다.

21세기, 앙리마티스의 작품들이 집에걸리는 이유

20세기 극초반 자유자재의 색감과 붓터치로 주관적이고 해석적인 야수파 예술을 펼친 그의 작품들은, 때로 파블로 피카소와 견주어 해석될 만큼 센세이셔널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그림들이 오늘날 자취생들의 사랑을 받고 자취생 인테리어로 부상하게된 이유가 뭘까요? 누가 제일 먼저 알아봤을까? 무심한 표정의 여성의 그림 '부드러운 머릿결을 가진 나디아'는 하얀 커피테이블 곁에 녹색 식물과 함께 무심하게 놓여 sns에 올려진 사진이나, 유투브영상에서 흔히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흰 바탕에 그의 이름 Henri Matisse 만 쓰인 액자도 많은 인기를 얻고 '푸른 누드' 와 같은 그의 수 많은 작품들은 스티커, 액자, 헨드폰 케이스로 까지 제작되어 판매됩니다. 그의 미니멀리즘과 추상적인 화풍은 집에 걸었을 때 전체적인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으로 보일 수 있고, 작은 포인트로 걸어두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딱 좋아 사랑을 받는 듯 합니다. 한 때에 크림트의 키스가 카페나 공공장소에 걸리고,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을 때처럼, 시대를 만난 유행일 지 모르지만, 이 시대 작가들의 시점으로 해석된 추상학 적이고 독특한 색채의 작품들은 단순히 그림 한 점인데요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되고 저마다에게 의미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더욱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림 인테리어, 앙리마티스 외에 또 어떤 게 있을까?

이렇게 그림에 빠져 공간의 밋밋함을 없애고 가구대신 한 점의 그림액자로 인테리어를 완성하려는 시도가 많다 보니, 앙리마티스와 더불어 사랑받는 화가들의 작품들이 있는데요, 이에는 에드워드호퍼의 '소도시의 사무실', 몬드리안의 '컴포지션', 클로드모네의 작품들이 있고, 북유럽 스타일의 액자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또한 정물이나, 사람에게 포커싱된 그림이 아니라 공간안에 다른 공간을 더한 듯해 보이는 스웨덴 화가 칼 라르손의 작품들 또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칼 라르손은 스웨덴 스톡홀름출신의 화가로, 유년시절 가난한 아이였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학교에 가게 되고 성년이 되고는 프랑스 파리로 가서 그의 특유의 부드럽고 투터운 붓칠의 수채화 작품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만난 여성화가와 사랑해 빠져 슬하에 여덟 자녀를 두는데 이후 그의 그림속에 귀엽게 등장하는 소녀와 소년이 모두 그의 자녀들이라고 하네요. 그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고, 현대에 그의 따뜻하고 평화로우면서도 두껍게 터치한 붓자국의 그림은 집안에 걸어두면 앤팈하면서도 잘 어우러져 인테리어에 좋은 도구가 되곤 합니다. 이렇게 1800년대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출신의 작가들도 결국 파리로 건너와 본격적인 미술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색채, 화풍을 갖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그들이 난 출신을 담고 있다고 하니, 북유럽 인테리어를 지향하시는 분들은 북유럽 출신의 작가들을 검색해서 작품을 골라 보시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앙리마티스, 그의 죽음과 작품들

앙리마티스는 1896년 후반 첫 작품을 출시 한 후로 부터 그가 십이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게 된 1941년 전 까지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그가 수술을 받고 나서의 작품도 사실 찾을 수 있습니다만, 당시 수술 이후에는 이젤 앞에 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아 그의 조수들의 도움으로 강렬한 색의 구아슈로 칠한 종이를 오려 붙인 그림을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종이를 오려 캔버스 위에 원하는 모양으로 배치 하는 것은 붓을 들고 유화그림을 그리는 것에 비해 훨씬 육체적인 노동이 덜했고, 동시에 그가 구상한 작품들을 구현해 낼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을 만들면서 그는 행복해 했다고 합니다. 이때 만들어진 작품들이 바로 앙리마티스의 '푸른누드', '댄스', '이카루스' 등 입니다. 후에 그는 1943년 부터 1947년 사이의 작품들을 묶어 '재즈'라는 이름으로 작품집을 출판했고, 그의 독창적인 종이오리기 방식의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54년 그는 사망하지만 1951년까지도 그는 성당에 있는 스테인리스 글라스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등 혼신을 다해 작품활동을 했죠.

예술가들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가난할지는 몰라도 행복지수가 높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앙리마티스의 작품 활동들만을 들여다 보면, 그는 눈을감는 날까지 행복했을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완성도가 높지 않았던 의학기술에 불구하고 암수술이라는 큰 수술을 겪고 나서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캔버스에 담아 낸 그는, 진심으로 미술을 사랑한 화가 그리고 항상 아이디어가 넘치는 예술가였으리라 생각되네요. 고맙습니다. 당신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셔서요 앙리마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