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피아노의 시인 그의 대표곡들
쇼팽의 녹턴, 좋아하시나요? 저는 아침에 좀 조용한 곡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고등학생때엔 쇼팽의 녹턴을 알람으로 설정해 놓곤 했는데요,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 그의 대표곡들에 대해 오늘의 글을 써 보겠습니다.
폴란드 태생의 작곡가가 조명을 받기까지
쇼팽은 1810년 폴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작곡을 시작한 것은 고작 7살이 되었던 해 인데요, 이때 자작곡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귀족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고 합니다. 따라서, 쇼팽은 바르샤바의 귀족들 앞에서 연주하게 되었고, 이는 쇼팽을 폴란드 사람들에게 더욱 알리는 계기가 되었죠. 당시 모차르트나 베토벤과 같은 피아노 천재들은 오스트리아나 독일 출신들 이었기 때문에 폴란드 사람들은 쇼팽의 등장에 매우 자랑스러워 하며 흥분했다고 합니다. 그의 첫 스승인 체코의 피아니스트 보이차에흐 지브니도 쇼팽이 7세 때 기로체프 협주곡을 완주하는 것을 본 뒤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 며 그가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것을 격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브니의 가르침을 받은 뒤 쇼팽은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중학생때 교육을 받고, 18세가 되던 해 본격적으로 당시 음악의 고장이었던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게되면서, 그의 전성기가 시작되죠.
혁명의 참혹함 속에 탄생한 에튀드 '혁명'
쇼팽이 빈에 머물던 시기 그의 고향 폴란드에서는 러시아에 대항한 혁명이 일어났고, 이는 폴란드의 대실패로 끝나게 되었는데요. 이 때, 그의 가족들이 있던 고향은 러시아 군의 잔인한 진압과 약탈로 인해 초토화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쇼팽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했을 때 '에튀드 혁명' 을 작곡합니다. 사실 이 에튀드라는 장르는 음악에서 악기의 길을 잘 내기 위해 같은 음을 반복적으로 넣은 음악의 장르로, 고차원의 예술적인 곡들을 잘 연주하기 위해 악기와 연주자가 연습하는 곡이라고 하는데요, 쇼팽이 작곡한 에튀드는 혁명을 포함해 총 27곡 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러시아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도 수 많은 에튀드를 매일 연습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다시 돌아와, 이 당시 탄생한 쇼팽의 에튀드 '혁명'은, 모두들 들으면 아시는 곡으로 그 배경을 알고 들으니 어쩐지 구슬프게 느껴집니다. 폴란드 곳곳이 러시아 폭군들의 진압으로 폐허가 된 상황을, 그리고 그 곳에 고향을 두고 타지에 머물렀던 쇼팽의 심정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감상해 보세요. 저는 그의 혁명을 들을 때 마치 눈 앞에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이 떠오르는 듯 했습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틀어줘
쇼팽의 사생활을 들여다 보면, 그는 사랑했던 가족을 떠나 그의 꿈을 펼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빈에서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또 독일에서 미국으로 또다시 미국에서 프랑스로 옮겨 다녔습니다. 피아노를 사랑했고, 가족을 사랑했던 그가 공연을 통해 얻은 모든 수익금은 그의 아내에게 보내져 두 자녀를 양육하는 데 거의 모두 쓰였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상드는 그와의 관계와 결혼생활에 있었던 갈등을 글로담아 소설로 만들고 지인들 앞에서 낭독을 했다고 합니다. 이는 사실 쇼팽을 겨냥한 저격글이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쇼팽만 그것을 몰랐다고 하네요. 결정적으로는 둘 째 자녀의 결혼 문제로 상드와 크게 다투고, 그렇게 이 둘은 이별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훗날, 지병으로 숨을 거두게 되는 쇼팽의 장례식에 조차 상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니, 쇼팽의 마지막이 더욱 슬프고 외롭게 느껴집니다. 물론, 가족을 두고 유럽과 미국을 전전하며 자신의 꿈을 좇은 당시의 천재 쇼팽에 대해 가족들의 원망이 없을리 없었을 테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훌륭한 가장은 아니었겠지만,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그 개인사로 보았을 때에는 시간이 흐를 수록 천편일률적인 쇼팽의 연주스타일은 관중들의 차가운 시선과 때론 외면을 받게 되었고, 철저하게 대중의 평가에 놓여야 했던 예술가의 애환도 느껴지며 안타까운 생이었다 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그의 장례식에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해 달라 그의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부탁했지만, 이 조차도 처음에는 장례식을 주관했던 성 마들렌 성당측에서 안된다고 했고 지인들의 설득에 끝내 그의 장례식장에서 레퀴엠을 들을 수 있었지만, 바흐와 모차르트에 대한 동경과 사랑이 컸던 그가 이 음악을 들으며 평안하고 행복하게 잠들었기를 바래봅니다.
쇼팽의 에튀드, 녹턴, 왈츠, 이별의 곡,
쇼팽의 연주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들과 작곡가들 사이에 '새로운 패러다임'과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으며, 그의 연주 스타일 또한 고전적인 방식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연주곡들에 비해서 쇼팽의 녹턴 E Flat Major 곡을 들어 보면 마음이 고요해 지고 평온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되는데요, 반면에 그의 연습곡인 에튀드 Black Keys(흑건)을 들어보면 또 쉴세없이 빠르게 손을 움직여 소리를 내는 율동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의 사인에 대해서는 결핵이었다, 심장병이었다 는 논란이 있었고, 그의 여동생에게 남긴 그의 심장을 보고 감정한 의료진들은 심장내 염증이 있었던 것으로 결합의 합병증을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음악이 개인적으로 피아노를 두드리는 듯한 음색과 베토벤의 경우 특히나 남성적인 음악이라고 느껴지는 반면에 쇼팽의 곡이 연주하는 피아노는 연주자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게 터치하는 듯합니다. 따라서 제 귀에는 클래식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스러운 선율이 느껴지며, 귀에 자극이 되지 않는 너무 듣기 좋은 음악으로 들리는데요, 특히 그의 왈츠 B Minor 곡을 들으면, 마치 제가 오스트리아 빈의 어느 연회장에 들어와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본인만의 고뇌가 분명 있었겠지만, 아름다운 시선과 심장을 지녔으리라 예상되는 쇼팽. 슈만과 같이 그를 극찬했던 예술가들에 의해 비평가들이 결국 그를 인정해 주었지만, 그가 잠든 곳에서는 비평가와 대중의 인정을 받지 않고도 행복하게 연주하고 작곡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21세기엔 더이상 쇼팽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슬프지만, 그가 남긴 곡들을 들으며 위안삼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