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입사하면 교육받게 되는 이것 '드라마 삼성'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얘기하자면, 삼성의 SVP(Samsung Shared Value Program)신입 교육에 항상 포함되어있는, 적어도 2010년대 초반까지는 그러했던 커리큘럼이 바로 드라마 삼성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재벌가 삼성과 삼성의 초대 비즈니스 모델등 삼성의 연혁 자체를 공부하게 되는 과정인데요, 그리고 이러한 연혁을 배우고 핵심 가치를 배우며 이 기업의 초대 설립자의 경영 철학도 함께 들여다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드라마삼성의 꽃 신입사원들이 퍼포먼스를 하게되는 삼성의 미래 모습이죠. 삼성그룹 계열사에 입사해 본 임직원들 뿐 아니라 국민의 대다수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삼성의 모태가 되었던 삼성상회로 부터 1938년 대구에서 출발합니다.
삼성상회와 별표국수
삼성의 설립자 호암 이병철은 부유한 아버지의 금전적인 지원으로 1936년 정미소를 시작했다가 예기치 않은 전쟁(중일전쟁)의 발발로 인해 1년여 만에 사업을 접게 됩니다. 첫 사업 실패 후 좀더 면밀한 분석을 통해 시작한 사업이 바로 삼성의 초기 모델인 삼성상회입니다. 대구의 교통적인 입지조건과 향토 작물들을 활용해 중국과의 무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제분기를 사들여 국수를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삼성이 국민들 사이에 유명해 지게 된 첫 번째 상품은 바로 별표국수 였다고 합니다. 삼성의 초대 사업 시기를 얘기할 때에 국수 다음으로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제일제당 일 것입니다. 국수의 흥행으로 크게 사업이 성장한 삼성은 국산 설탕을 활용해 조미료를 만들면서 1953년 제일제당을 설립하고 제일제당의 설립 불과 2년만에 또 제일모직또한 설립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의 탄생
제일제당이 훨훨 날던 시기 호암 이병철은 또 한번의 위기를 맞게되는데요, 이는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 으로 인한 대대적인 사업 압류 입니다. 당시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산업은 국영산업이 주를 이뤘고 사기업들은 국가에 의해 그 재산과 사업을 모두 압류 당할 수도 있는 시대적 배경 안에 있었기 때문에, 사카린 밀수사건 하나로 인해 삼성은 사업을 모두 국가에 압류당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가 기회가 된 것은 호암 이병철이 사업을 몽땅 빼앗겨 버린 그의 사업 역사의 두 번째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에도 포기해 버리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그의 안에는 중국과 일본에 무역사업을 해 오면서 보고 들으면서 알게된 일본의 인상적인 성장 스토리, 즉 전자산업으로 강대국으로 성장한 이야기가 있었고, 호암 이병철을 대한민국을 그러한 강대국으로 만들리라는 포부를 안고 반도체 기반의 전자 사업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1년여 동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호암은 다시 일어나 1968년, 수원일대 부지를 매입하면서 전자 산업으로 진출하죠.
수원 삼성전자 그리고 삼성전기
무역으로 시작해서 제일제당, 그리고 전자산업으로까지 삼성은 국가의 기반산업 전반에 걸쳐 비즈니스 모델을 불과 1-2년만에 확대, 변모시켜가며 위기와 기회를 적절히 이용해 온 영리한 기업입니다. 삼성의 고 이건희회장이 경영권에 들어선 것은 1979년으로 그 해를 시작으로 경영권 승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병희와 이건희가 모두 고인이 된 지금 삼성의 경영권과 관계사 간의 지분관계는 아직까지도 매스텀의 큰 화제가 되고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쉽게 정리하기 힘든 이슈가 되었습니다. 기존 삼성에 입사를 준비하는 취준생들의 경우 삼성고시라 불리는 SSAT 책을 사서 준비하고 이후 전공, 인성 면접등을 대비하면 각 계열사의 경쟁률에 따라서 공체 채용에 도전이 가능했습니다. 요즘 삼성전자에 지원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개발자 경우 프로그래머스, 나 백준 과 같은 프래그래밍 도서를 통해 실전 문제를 연습하고, 삼성 기출 문제집을 따로 구입하여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시험에 합격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술면접 대비는 다른 개발자 직군의 기술면접 대비와 비슷한데요, 네트워크, 알고리즘, 자료구조와 데이터베이스 등을 공부하시고 코딩 테스트 도 모의로 여러 번 보시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삼성 미래전략실은 왜 해체되었나?
삼성은 호암 이병철의 회장시절에서 부터 고수해 오던 컨트롤 타워가 존재하는데 임직원들은 모두 잘 알고있는 미전실, '미래전략실'입니다. 초기의 미래전략실은 사실 회장의 직무를 제일 가까이에서 의전하고 의사결정 과정에도 관여를 하던 회장 비서실에서 시작되었는데 삼성의 수십 여개 계열사안에 각 그룹의 미전실이 있고 이 곳에는 그룹 감사와 미래사업결정에 대한 검토를 하는 핵심인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최하직급이 과장직급인 조직으로 부회장 직급인 실장을 필두로 하여 100~ 150여 명을 둔 6-7여 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사장 및 전무 직급이 팀장으로 구성된 회장 직속 보고루트를 지닌 의사결정과 싱크의 컨트롤 타워 조직입니다. 삼성전자, 삼성전기, 물산, 및 각계 그룹에 비슷한 인사결정 방식으로 구성되는 조직입니다. 이 조직이 매스컴에 의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7년 최순실 사건과 관련된 뇌물수수건에 관한 사유이며, 2017년 3월 이 조직은 해체되었습니다. 물론 정부의 부정부패와 뇌물수수의 각종 부조리에 연루되어 불명예 스럽게 드러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룹차원에서 봤을 때 미전실로 발탁되는 인력은 항상 그룹내 인사고과 최고점을 받아 온 에이스급 부장들로 채워지며 미전실을 거치면 특진을 통해 임원급으로 각 그룹으로 돌려 보내는 방식을 가지고 있고, 또한 회장과 일부 의사결정권한자들을 통한 수직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다소 보완하여 그룹내 핵심인력들이 탄력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기도 했던 조직이라서 삼성으로써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